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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다큐 마이웨이)이광기의 눈물, 김태원-김영호와의 인연,그대를 보낸다,웃자웃자 뮤직비디오

by *!! 2018.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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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18일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서 이광기의 사연과 이야기가 공개되었다. '7살이었던 아들 석규와의 이별', '15년 무명 시절 이야기', '어려울 때 힘이되어준 지인들', '아내와 두 자녀 이야기' 등 이광기의 감동적인 사연들이 재조명 되었다.

이광기에게는 7살짜리 사랑스럽고 잘 생긴 '석규'라는 아들이 있었다. 항상 휴대폰을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어 주었던 아들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7살이던 2009년에 사랑하는 아들을 '신종플루'로 떠나 보내야 했다. 너무나 슬픈 일이다.

이광기는 아들이 신종 플루에 걸려 세상을 떠난 당시에는 아들의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세상이 원망스러웠고, 자신이 공인이라는 사실도 너무나 싫었다고 했다. 자기가 평범한 사람이었더라면 아무도 모른 채 가족의 슬픔으로만 끝나는 건데, 아들의 죽음에 대하여 전 국민이 아는 일이 되어버리니까 자기 자신을 짓누르는 게 더 크더라며 그 당시의 복잡했던 심경을 고백했다.

아들 석규는 전날까지만 해도 멀쩡하다가 그냥 시름시름 해서 병원에 갔더니 '신종플루'라고 했더란다.

치료하면 낫겠지 했는데, 응급실에 갔더니 자기가 보는 앞에서 심폐소생술을 하고, 그리고 자신 앞에서 아들이 떠났다며 눈물을 흘리며 당시를 떠올렸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하는 어린 아들을 먼저 보낸 부모의 심정을 누가 헤아릴 수 있겠는가? 이광기에게 아들의 죽음은 너무나 큰 고통이었을 것 같다.

이광기는 아들의 흔적을 지우지 못하고 주민등록등본상에서 말소를 못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어느 날 집으로 취학통지서가 왔더란다.



이미 죽은 아들을 잡고 있다고 해서 좋은 것만은 아니구나, 자꾸 생각하게 되고 더 아파지는구나 라고 말하며 이광기는 눈물을 보였다.

그런 후에 아내는 동사무소에 못가겠다고 해서 이광기가 혼자서 갔는데 아이를 떠나보내는 게 슬퍼서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는 게 너무 힘들더란다. 그래서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서 계속 눈물을 흘리고 있었는데, 동사무소 직원의 도움으로 "우리 아이 주민등록등본 말소하러 왔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한, 말소를 하기 전에 아이와 함께 있는 등본을 수십 장 뗐다고 말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 때부터는 초등학교 앞을 지나가면 눈물이 났다고 하며 동네 앞에 있는 초등학교를 돌아서 갔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우리 아이가 항상 ‘내년에 학교 가는 거지? 내년에 초등학생 되는 거지?’라고 말하며 되게 좋아했었다.”라고 말을 했다.

아들이 죽고 보험금이 통장에 들어오고 나서도 한참 울었다고 했다. 



도저히 이 보험금을 쓸 수 없어서 아들 석규의 보험금을 전액 기부했다고 밝혔다.

이후 이광기는 아이들을 위한 봉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광기는 지난 2010년 아이티 대지진 당시 부모를 잃은 수많은 아이들을 돕기 위해 그곳으로 달려갔다. 당시를 떠올리며 "아들에게 고맙다. 예전에는 한쪽만 바라봤다. 그런데 아들이 제가 이전에 보지 못하던 곳까지 볼 수 있게 바꿔줬다."고 말을 했다. 

어려운 아이들을 위한 이광기의 봉사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광기는 아들을 기리며 아이티 아이들에게 또 다른 나눔을 베풀었다. 이광기는 석규가 그린 그림들을 보던 중, 마지막으로 그린 그림이 아빠라는 것을 알았고, 그 그림을 보는 순간 오열했다고 했다.

이광기는 아들의 그림을 활용해 티셔츠를 만들어 판매한 수익금 2000만원 전액을 아이티 후원금으로 사용했다고 말했다. 이 티셔츠를 부모를 잃은 아이들에게 아빠와 함게 있는 느낌을 주기 위해 만들게 됐고, 수익금 전액을 아이티 학교 설립에 기부했다고 덧붙였다.


지금도 아이들을 위해 봉사활동과 후원을 하고 있는 이광기에게 '봉사활동이란 스스로를 치유하는 과정' 이라고 한다. 정말 존경스럽다.

1985년에 데뷔한 후 어느덧 34년 차에 접어드는 연기자 이광기. 그에게는 15년이라는 무명시절이 있었다.

이광기는 약 15년 동안을 될 듯, 될 듯 하면서도 안뜨고 무명 생활이 계속 되었다고 했다.

이광기는 군대에 가기 전에는 될 것 같았는데 다시 와서 보니 원점이었다고 말했다. 자신을 찾아주는 사람이 옛날 같지 않고 3년 동안 군대 갔다 온 사이에 다 잊혀진 것 같다고 말하며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그런 그에게 15년이라는 긴 무명 생활을 청산하게 해준 사극이 이었는데 바로 '태조 왕건' 이었다. 이 드라마에 출연을 했던 게 이광기의 연기 인생 전환점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광기는 "그 당시만 해도 보이는 게 없었다. 뒤로 물러서는 순간 낭떠러지이기 때문에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했다."라고 말을 하며 무명생활 15년 끝에 2000년에 신인상을 수상했다며 인터뷰를 했다.

이광기는 이제 34년 차 연기자로서 연예계 공식 마당발이다.

이광기는 현재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을 하고 있고 또한, 사진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한편, 배우 이광기는 그룹 부활의 리더인 김태원과 배우 김영호와의 남다른 인연을 공개했다.




이광기는 김태원과 김영호에 대해서 자신이 가장 힘들 때 옆에 있어줬던 형들이어서 너무나 감사하다고 말을 했다. 자신이 힘들었을 때도 항상 위로해주고 격려해줬으며 그런 분들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김태원이 가장 어려운 시기였던 2007년쯤 혼자서 오피스텔에 살고 있을 때

이광기가 밥을 싸들고 김태원 집에 찾아 갔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이광기는 김태원이 어떻게 될 것 같아서 찾아갔다며 웃었다.

이광기가 힘들었던 시간에 그에게 힘을 줬던 음악이 바로 '부활'의 음악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부활의 '생각이나' 라는 노래를 자주 불렀는데, 그 노래를 부르면 위로가 되었다고 했다.

또한 김영호와도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데, 이광기의 주선으로 김영호와 김태원도 친하게 되었다고 한다. 급기야 김영호는 김태원에게서 '그대를 보낸다'라는 곡을 받아 음반을 냈다고 전했다. 아래 '그대를 보낸다'를 링크해 놓았으니 감상하시길~ㅎㅎ

<김영호, '그대를 보낸다' 듣기>

한편 이광기 역시 '웃자웃자'라는 곡을 음반으로 제작해서 발매했다고 한다. 의리로 뭉친 지인들의 도움으로 뮤직비디오까지 제작했다고 한다. 자작 음반 비용은 약 2천만원 정도 들었다고 한다.

이광기는 뮤직비디오에 함께 출연했던 지인들에게는 감사의 의미로 '김'을 전달했다고 말하며 웃었다.

<이광기 웃자웃자 뮤직비디오> 

비록 어린 아들의 죽음이라는 슬픈 일을 겪었지만 세월이 지나고 이제는 긴 어둠 끝에서 다시 미소를 찾아가고 있는 이광기 가족의 현재 모습도 보여주었다.

이광기는 베트남 나트랑으로 아내, 그리고 둘째 아들 준서와 함께 오랜만에 휴식을 위한 여행을 왔다.

또한, 그는 “물론 시간이 지나면 또 살아갈 수 있겠지만 둘째 아들 준서가 태어나면서 아픔을 묻는 시기가 좀 빨라졌다.” 고 말을 하기도 했다.

이광기의 아내 박지영씨도 출연을 해서 “우리가 힘든 시기를 겪을 때 준서가 없었다면 그 기간이 더 길었을 수도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시는 못 가질 것 같았던 충만감.

하지만, 현재의 상황에 대하여 만족하며 행복을 만들어 가는 이광기씨 가족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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